'무지의 지'는 겸손이 아니라 확인하는 방법이었다
확인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예요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소크라테스 말로 알려진 문장인데, 플라톤이 적은 원문은 조금 더 구체적입니다.
변명 21d의 원문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소크라테스의 말로 알려진 축약형입니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나오는 원문은 조금 더 구체적입니다.
델포이 신탁이 소크라테스보다 지혜로운 자가 없다고 하자, 그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확인하러 다닙니다. 지혜롭다고 알려진 사람들을 찾아가 대화를 나눈 뒤 이렇게 정리합니다.
그 사람도 나도 아름답고 좋은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그는 모르면서 안다고 여기고, 나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여긴다. 딱 그만큼 내가 더 지혜로운 것 같다.
그는 모르면서 안다고 여기고 나는 모른다는 것을 안다 딱 그만큼 낫다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21d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 사람도 나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인데, 그는 모르면서 안다고 여기고 나는 모른다는 걸 안다. 딱 그만큼 내가 더 나은 것 같다고요.

이건 어떤 태도일까요
겸손을 말한 게 아닙니다. 아는지 모르는지를 어떻게 확인하느냐의 문제죠. 그가 한 일도 계속 질문한 것이었고요.

모른다는 말이 나오는 팀
안 나오면
- 다들 확신 있게 말해요
- 모르는 지점이 안 보여요
- 확인을 안 해요
- 나중에 크게 틀려요
나오면
- 잘 모르겠다고 말해요
- 모르는 지점이 드러나요
- 확인하고 넘어가요
- 덜 틀려요
이 문장은 겸손의 표현이 아닙니다. 자신을 낮춘 게 아니라 자기가 왜 더 나은지를 정확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차이는 지식의 양이 아니라 아는지 모르는지를 판별하는 능력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건 방법론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실제로 한 일은 계속 질문하는 것이었습니다.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그 근거를 묻고, 그 근거의 근거를 다시 물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디까지가 확인된 것이고 어디부터가 가정인지가 드러납니다.
앞서 다룬 더닝-크루거 효과의 고전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그쪽은 현상을 관찰한 것이고, 이쪽은 대응 방법에 가깝습니다.
회의에서도 비슷합니다. "잘 모르겠다"는 말이 나오는 팀이 대체로 판단을 덜 틀립니다. 모르는 지점이 드러나야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회의에서 쓸 수 있는 방식
가장 유용한 질문은 '이 중에 아직 확인 안 된 게 무엇인가요'입니다. 자료를 다 들은 뒤에 이 질문을 던지면 가정으로 세워진 부분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모르겠다고 말한 사람에게 면박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번이라도 그러면 다음부터 아무도 모른다고 말하지 않고, 그때부터 모르는 지점이 안 보이게 됩니다.
확신에 찬 의견일수록 근거를 한 번 더 묻는 습관도 유효합니다. 앞서 다룬 것처럼 확신의 크기와 실력은 다른 축입니다.
실제로 '잘 모르겠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팀이 판단을 덜 틀립니다. 모르는 지점이 드러나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조심할 것
'나는 모른다'가 판단 회피의 수단이 되면 곤란합니다. 소크라테스는 모른다고 하고 멈춘 게 아니라 계속 물었습니다. 모른다는 인정은 출발점이지 결론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태도를 남에게 쓰면 대화가 아니라 심문이 됩니다. 실제로 아테네 시민들이 소크라테스를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계속 근거를 캐물으면 상대는 공격받는다고 느낍니다.
널리 도는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만 안다'라는 형태는 원문 그대로가 아니라는 점도 알아둘 만합니다. 뜻은 크게 어긋나지 않지만 비교급 문장이 원래 형태입니다.
이건 물어보세요
- 이 중에 아직 확인 안 된 게 무엇인지 묻기
- 모르겠다고 말한 사람에게 면박 주지 않기
- 확신에 찬 의견일수록 근거를 한 번 더 묻기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확인하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쓸모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