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길은 없었다, 사람이 다녀서 생겼다 — 루쉰
선례가 없다는 건 판단이 아니라 정보예요
루쉰의 단편 「고향」은 이렇게 끝납니다.
「고향」의 마지막 문단
루쉰의 단편 「고향(故鄕)」은 1921년 발표됐습니다.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화자가 어린 시절 친구를 다시 만나는 이야기인데, 세월과 신분 차이로 둘 사이가 완전히 달라져 있습니다.
소설 마지막 문단에 이런 취지의 문장이 나옵니다. 희망은 본래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 땅 위의 길과 같다. 원래 땅에는 길이 없었지만,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길이 된다.
원문은 其實地上本沒有路 走的人多了 也便成了路입니다. 중국 현대문학에서 가장 널리 인용되는 문장 중 하나입니다.
본래 길이 없었지만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길이 된다
루쉰 「고향」 1921
"희망은 본래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 땅 위의 길과 같다. 원래 길이 없었지만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길이 된다."

희망은 있는 걸까요
희망을 가지라는 응원이 아닙니다. 있는지 없는지 따지는 질문 자체가 틀렸다는 얘기예요.

같은 사실, 다른 결론
판단으로 읽으면
- 아무도 안 하네
- 이유가 있겠지
- 우리도 하지 말자
- 그대로예요
정보로 읽으면
- 아무도 안 하네
- 왜 안 했는지 알아보자
- 작게 해보자
- 우리가 먼저예요
이 문장이 하는 일은 응원이 아닙니다. 질문 자체가 틀렸다고 지적하는 쪽입니다.
희망이 있느냐 없느냐는 확인할 수 있는 사실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루쉰은 그게 확인 가능한 대상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다니기 전에는 길이 없고, 다니면 생깁니다. 다니기 전에 '길이 있느냐'고 묻는 건 답이 없는 질문입니다.
일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 여기 걸립니다. "이 업종에서 그렇게 하는 데가 없는데요." 없는 건 맞습니다. 다만 그건 안 된다는 판단이 아니라 아직 아무도 안 갔다는 정보입니다.
일에서도 비슷한 순간이 있습니다. "이 업종에서 그렇게 하는 데가 없는데요." 없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그건 안 된다는 뜻이 아니라 아직 아무도 안 갔다는 뜻이죠.
선례가 없다는 말을 들으면
먼저 정말 없는지, 아니면 우리 업계에만 없는지 확인합니다. 다른 업종에서는 이미 표준인 방식이 우리 업계에만 안 들어온 경우가 많습니다. 앞서 다룬 우물 안 개구리 편과 이어집니다.
다음은 왜 안 했는지 알아보는 것입니다. 이유가 있어서 안 한 경우와 아무도 시도 안 한 경우는 완전히 다릅니다. 규제나 비용 구조 때문이면 우리도 안 되는 게 맞고, 그냥 관행이면 기회입니다.
그다음 작게 한 번 해보고 결과로 판단합니다. 논쟁으로는 결론이 안 납니다. 선례가 없는 일은 논리로 설득이 안 되기 때문에, 작은 결과를 만드는 게 가장 빠른 설득입니다.
웹 업계에서도 그렇습니다. 지금 표준이 된 방식 중 상당수가 처음엔 아무도 안 하던 것이었습니다.
다만 조심할 것
이 문장이 근거 없는 낙관으로 쓰이면 곤란합니다. 루쉰의 원 맥락은 오히려 어둡습니다. 「고향」은 희망적인 소설이 아니고, 이 문장도 확신이 아니라 확신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태도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선례가 없는 이유가 수요가 없어서인 경우가 실제로 많습니다. 아무도 안 하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왜 아무도 안 하는지는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작게 해본다는 것도 조건이 있습니다. 실패했을 때 회복 가능한 규모여야 합니다. 앞서 다룬 버핏 편처럼, 되돌릴 수 없는 영역에서는 선례 없음이 충분한 경고 신호입니다.
이건 확인해보세요
- 정말 없는지, 아니면 우리 업계에만 없는지 보기
- 다른 업계에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 찾아보기
- 작게 한 번 해보고 결과로 판단하기
선례가 없다는 말은 정보이지 판단이 아닙니다.
선례가 없다는 말은 정보이지 판단이 아닙니다. 왜 없는지까지 확인하면 그때 판단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