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쓸 시간이 없어 길게 썼습니다 — 파스칼
짧게 쓰는 쪽이 더 오래 걸리거든요
파스칼이 편지 끝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 편지가 길어진 건 짧게 쓸 시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편지 끝에 붙인 한 문장
블레즈 파스칼은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이면서 뛰어난 문장가였습니다. 1656~57년에 익명으로 쓴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Lettres provinciales)』는 프랑스 산문의 전범으로 꼽힙니다.
그중 열여섯 번째 편지 끝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이 편지가 길어진 것은 짧게 쓸 시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정확한 관찰입니다. 마크 트웨인과 처칠 등 여러 사람에게도 비슷한 말이 귀속돼 있는데, 확인되는 가장 이른 형태가 파스칼의 이 편지입니다.
이 편지가 길어진 것은 짧게 쓸 시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파스칼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1657
1657년 문장인데 지금 제안서에 그대로 붙습니다.

분량은 무엇의 신호일까요
길게 쓰는 건 쉽습니다. 아는 걸 다 적으면 되니까요. 짧게 쓰려면 무엇이 핵심인지 먼저 정해야 하고, 그건 생각을 끝냈다는 뜻입니다.

길게와 짧게, 무엇이 어려울까요
길게 쓰기
- 아는 걸 다 적어요
- 고르는 수고가 없어요
- 빨리 끝나요
- 읽는 사람이 고생해요
짧게 쓰기
- 핵심을 먼저 정해요
- 버릴 것을 골라요
- 오래 걸려요
- 읽는 사람이 편해요
왜 짧게 쓰는 게 더 오래 걸릴까요. 길게 쓰는 건 아는 것을 다 적으면 됩니다. 고르는 수고가 없습니다.
짧게 쓰려면 먼저 무엇이 핵심인지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를 버려야 합니다. 버리려면 판단이 끝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짧은 글은 생각이 정리됐다는 증거가 됩니다.
받는 쪽도 이걸 감지합니다. 분량이 긴 문서를 성의로 읽는 경우도 있지만, 실무에서는 대개 '아직 정리가 안 됐구나'로 읽힙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는 일을 읽는 사람에게 떠넘긴 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분량이 긴 문서는 성의의 표시가 아니라 아직 정리가 안 됐다는 신호인 경우가 많습니다. 받는 사람도 대개 그렇게 읽고요.
제안서와 보고에 옮기면
가장 효과가 큰 방법은 맨 앞에 결론 한 문장을 새로 쓰는 것입니다. 이미 쓴 글을 줄이는 것보다 결론을 먼저 정하는 쪽이 빠릅니다.
그다음 그 문장을 뒷받침하지 않는 문단을 지웁니다. 아깝지만 지웁니다. 남겨두면 결론이 흐려집니다.
제안서라면 한 장 요약을 맨 앞에 붙입니다. 앞서 다룬 것처럼 담당자가 그대로 위에 올릴 수 있어야 결재가 진행됩니다. 상세 자료는 뒤에 두면 됩니다.
메일도 같습니다. 용건을 첫 줄에 쓰고 배경을 뒤에 두면 회신이 빨라집니다. 배경부터 쓰면 스크롤하다 나중에 답하겠다고 미룹니다.
다만 조심할 것
짧은 게 항상 좋은 건 아닙니다. 맥락이 필요한 자리에서 짧게 쓰면 오해가 생기고, 오해를 푸는 데 더 많은 시간이 듭니다. 특히 처음 함께 일하는 상대에게는 배경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앞서 다룬 검색 관점에서는 길이가 필요합니다. 웹 콘텐츠는 충분히 깊어야 검색에서 살아남습니다. 읽는 사람이 정해진 문서와 검색으로 찾아오는 글은 기준이 다릅니다.
또 짧게 쓴다고 정보를 빼면 안 됩니다. 줄이는 것은 중복과 수식이지 내용이 아닙니다.
이 순서로 줄여보세요
- 맨 앞에 결론 한 문장을 새로 쓰기
- 그 문장을 뒷받침하지 않는 문단 지우기
- 제안서는 한 장 요약을 맨 앞에 붙이기
분량이 길어지는 건 대개 성의가 아니라 시간 부족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받는 쪽도 대개 그렇게 읽습니다.
이어서 읽기 — 모두가 세상을 바꾸려 하지만 자신은 그대로다 — 톨스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