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이 있습니다 — 남은 것을 세는 일
각오가 아니라 숫자를 적었어요
1597년, 조선 수군은 사실상 전멸한 상태였습니다. 조정에서는 수군을 없애고 육군에 합치라는 명이 내려왔고요.
1597년, 조선 수군이 남긴 것
1597년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은 사실상 궤멸했습니다. 판옥선 대부분이 파괴되고 지휘부도 무너졌습니다. 조정에서는 수군을 폐지하고 육군에 합치라는 명이 내려왔습니다.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된 이순신이 올린 장계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今臣戰船 尙有十二 — 지금 신에게는 아직 전선 열두 척이 있습니다.
그해 9월, 명량에서 이 배들로 왜선 백여 척과 맞섰습니다. 결과는 알려진 대로입니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 전선 열두 척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계, 1597 · 今臣戰船 尙有十二
이순신이 올린 장계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 전선 열두 척이 있습니다."

무너진 뒤 먼저 세는 것
주목할 건 '열두'라는 정확한 숫자입니다. 아직 싸울 수 있다는 각오만 적은 게 아니라, 무엇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셌습니다.

잃은 것과 남은 것
잃은 것을 세면
- 숫자가 계속 커져요
- 책임 소재를 따져요
- 다음 수가 안 보여요
- 시간이 흘러가요
남은 것을 세면
- 숫자가 정해져요
- 쓸 수 있는 게 보여요
- 할 수 있는 게 나와요
- 바로 움직여요
이 문장에서 주목할 것은 각오가 아니라 숫자입니다. '싸우겠습니다'가 아니라 '열두 척이 있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일이 무너졌을 때 사람은 대개 잃은 것부터 셉니다. 얼마를 손해 봤는지, 무엇이 사라졌는지, 누구 책임인지를 따집니다. 이 계산은 끝이 없고 다음 수가 안 나옵니다.
남은 것을 세면 다릅니다. 숫자가 정해지고, 정해진 숫자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나옵니다. 열두 척으로 할 수 있는 전술이 그다음에 나온 것이지, 각오가 먼저 나온 게 아닙니다.
실제로 명량의 전술은 열두 척이라는 제약에서 나왔습니다. 좁은 물목을 골라 수의 열세를 무력화한 선택이 그렇습니다.
일이 무너졌을 때 대부분은 잃은 것부터 셉니다. 남은 것을 세는 게 먼저인데요. 그 목록이 다음 판단의 전부가 됩니다.
일이 무너졌을 때
프로젝트가 엎어지거나 큰 거래처를 잃었을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지금 확실히 남아 있는 것을 숫자로 적는 것입니다. 현금, 인력, 계약 잔여분, 쓸 수 있는 자산, 살아 있는 고객 관계.
적어보면 대개 생각보다 있습니다. 잃은 것에 시선이 가 있는 동안 남은 것이 안 보였을 뿐입니다.
그다음 그중 이번 달에 실제로 쓸 수 있는 것을 표시합니다. 있어도 지금 못 쓰는 자원은 계산에서 빼야 판단이 정확해집니다.
그리고 그 목록만 보고 다음 한 수를 정합니다. 없는 것을 전제로 세운 계획은 실행되지 않습니다.
다만 조심할 것
이 일화가 정신력이면 된다는 이야기로 읽히면 곤란합니다. 명량의 승리는 지형 선택, 조류 시간, 전투 대형 같은 구체적인 준비의 결과였습니다. 남은 것을 세는 건 그 준비의 출발점이지 대체물이 아닙니다.
그리고 남은 자원이 정말로 부족할 때는 접는 결정도 필요합니다. 모든 상황이 열두 척으로 이길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앞서 다룬 매몰비용 편과 함께 봐야 합니다.
역사적 인물의 결단을 경영에 그대로 옮기는 것도 조심할 부분입니다. 전쟁과 사업은 실패의 성격이 다릅니다.
이 순서로 세어보세요
- 지금 확실히 남아 있는 것을 숫자로 적기
- 그중 이번 달에 실제로 쓸 수 있는 것 표시하기
- 그 목록만 보고 다음 한 수를 정하기
무너진 뒤에 잃은 것부터 세면 다음 수가 안 나옵니다. 남은 것을 세는 게 먼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