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안 고르는 선택지가 하는 일
그 안을 빼자 선택이 통째로 옮겨갔습니다
같은 값에 받는 건 적은 안이 있습니다. 아무도 고를 이유가 없죠. 그런데 그 안을 빼자 매출 구성이 바뀌었습니다.
이코노미스트 구독 페이지에서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가 자주 소개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코노미스트』 구독 페이지에 세 가지 안이 있었어요. 온라인만 59달러, 인쇄판만 125달러, 온라인+인쇄판 125달러였습니다.
두 번째 안은 이상합니다. 세 번째 안과 가격이 같은데 받는 것은 적어요. 아무도 고를 이유가 없는 선택지죠.
세 안이 다 있을 때
- 온라인만 59달러
- 인쇄판만 125달러
- 온라인+인쇄판 125달러
- 다수가 세 번째를 골랐다
두 번째를 뺐을 때
- 온라인만 59달러
- 온라인+인쇄판 125달러
- —
- 선택이 첫 번째로 이동했다
애리얼리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해보니, 세 안이 모두 있을 때는 다수가 세 번째(125달러)를 골랐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안 고르던 두 번째 안을 빼자, 선택이 첫 번째(59달러)로 크게 이동했어요.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사람은 절대적인 가치를 계산하기 어렵습니다. 온라인 구독이 59달러의 값어치가 있는지를 판단할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비교할 수 있는 것끼리 비교합니다.

인쇄판만 125달러와 온라인+인쇄판 125달러는 비교가 아주 쉽습니다. 같은 값에 하나를 더 주니 명백히 낫죠. 이 확실한 우위가 판단을 끌어당깁니다.
반면 온라인만 59달러와 온라인+인쇄판 125달러는 비교가 어렵습니다. 무엇이 더 나은지 따지려면 인쇄판의 가치를 스스로 매겨야 하는데, 그게 어려우니 비교하기 쉬운 쪽으로 판단이 흐르고요.
요금제를 짤 때
안이 두 개면 대개 싼 쪽으로 몰립니다. 비교 기준이 가격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세 번째 안을 넣으면 비교의 축이 하나 늘어납니다.
실무적으로는 이렇게 정리됩니다. 각 안이 어떤 고객을 위한 것인지 한 줄로 적을 수 있어야 해요. 적을 수 없으면 그 안은 있으나 마나입니다.
그리고 가장 팔고 싶은 안에 추천 표시를 하나만 답니다. 두 개 이상 달면 표시의 의미가 사라져요.

1년간 아무도 안 고른 안은 없애는 게 좋습니다. 다만 그 안이 비교 기준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는 확인해야 해요. 없앤 뒤 상위 안의 판매가 줄면 그 안이 일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서비스업에도 그대로 옮겨갑니다. 홈페이지 제작 견적을 낼 때 '기본형·표준형·확장형'을 놓는다면, 각 항목의 차이가 고객이 실제로 체감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페이지 수만 다르면 비교가 어렵고, 결국 싼 쪽으로 갑니다. 반면 유지보수 기간이나 응답 시간처럼 겪어본 사람이 아는 차이를 넣으면 비교가 됩니다.
여기서 하나 덧붙이면, 안을 늘리기 전에 지금 안이 왜 안 팔리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구성 문제가 아니라 값 자체가 시장과 안 맞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럴 때 안을 늘리면 안 팔리는 안이 하나 더 생길 뿐입니다.
순서와 이름도 같이 일한다
같은 세 안이라도 어떤 순서로 놓느냐에 따라 읽히는 값이 달라집니다. 앞서 다룬 앵커링과 겹치는 자리예요. 위에 놓인 숫자가 아래 안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니까요.
이름도 마찬가지입니다. '베이직·스탠다드·프리미엄'처럼 위계만 드러내는 이름은 싼 걸 고르면 손해 보는 느낌을 줍니다. 반면 '1인·소규모팀·다부서'처럼 대상을 드러내는 이름은 자기에게 맞는 걸 고르게 하죠. 후자 쪽이 나중에 불만이 적습니다.
안을 고른 뒤 바꿀 수 있는지도 적어두면 좋아요. 되돌릴 수 있다고 하면 결정이 빨라지거든요. 큰 안을 고르는 데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도 같이 붙습니다.
여기서 넘지 말아야 할 선
이 효과를 쓰려면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끼워 넣는 안이 누군가는 실제로 고를 만한 것이어야 해요. 순전히 미끼로만 존재하는 안은 고객이 눈치채는 순간 신뢰가 무너집니다.
특히 요즘은 소비자가 이 기법을 압니다. 커뮤니티에서 요금제 구성을 두고 '미끼 안이네'라는 반응이 나오는 걸 흔히 봐요. 들키면 효과가 0이 아니라 마이너스입니다.
그리고 안을 세 개로 만드느라 실제로 제공하기 어려운 구성을 넣으면 안 됩니다. 팔린 뒤에 감당이 안 되면 그게 더 큰 문제죠.
원 실험은 학생 대상 소규모였다는 점도 감안해야 합니다. 방향은 여러 연구에서 재현됐지만 효과 크기는 상황마다 다릅니다.
요금제를 짤 때 정할 세 가지
- 각 안이 어떤 고객을 위한 건지 한 줄로 적어보기
- 가장 팔고 싶은 안에 추천 표시 하나만 붙이기
- 1년간 아무도 안 고른 안은 없애기
첫 번째를 해보면 나머지가 자동으로 정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줄이 안 써지는 안이 어느 것인지가 바로 드러나거든요. 그 한 줄이 그대로 안내 문구가 되기도 하고요.
실제 가치는 그대로인데 비교 대상이 생기면 선택이 바뀝니다. 다만 그 대상이 진짜여야 오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