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 홈페이지는 번역이 아니라 구조다
같은 내용을 옮겨도 앞에 놓을 것이 달라집니다
영문 사이트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은 대개 이렇게 옵니다. "지금 국문 그대로 영어로만 해주세요." 그런데 그렇게 만든 사이트는 읽히긴 해도 안 통합니다.
보는 사람이 다르면 순서도 다르다
국내 고객이 기업 사이트에서 먼저 보는 건 회사 소개와 실적입니다. 어떤 회사인지 확인하고 나서 제품을 봐요. 신뢰가 먼저고 조건이 나중입니다.
해외 바이어는 반대로 움직입니다. 무엇을 만드는지, 얼마에 공급할 수 있는지, 인증은 있는지, 최소 주문량은 얼마인지를 먼저 찾습니다. 조건이 맞아야 회사를 봅니다.
그래서 같은 내용을 담아도 앞에 놓을 항목이 달라집니다. 번역이 아니라 재구성에 가깝죠. 국문 첫 화면의 연혁 자리에 영문에서는 제품 사양표가 오는 식입니다.
국내 사이트에서 당연하게 넣던 것 중에 빼도 되는 것도 있습니다. 대표 인사말이나 사훈 같은 항목이 그래요. 대신 그 자리에 공급 가능 수량, 납기, 결제 조건처럼 바이어가 메일을 쓰기 전에 확인하고 싶어 하는 내용을 넣습니다. 첫 화면에서 그게 보이면 문의의 질이 달라집니다.

번역은 초안과 감수를 나눈다
전체를 전문 번역에 맡기면 비용과 기간이 크게 붙습니다. 반대로 기계 번역을 그대로 올리면 현지에서 어색하게 읽히고, 제품 사양처럼 오해가 곧 분쟁이 되는 문장에서는 위험하기까지 해요.
현실적인 절충은 둘을 나누는 겁니다. 기계 번역으로 초안을 만들고, 해당 언어권 감수를 한 번 거치는 방식이요. 비용은 절반 아래로 내려가고 품질은 대부분 확보됩니다.
다만 감수에서 꼭 볼 항목은 정해두세요. 회사 소개 문장이 조금 밋밋한 건 참을 수 있지만, 단위와 수치, 납기 조건, 인증 명칭이 틀리면 그건 참을 수 없는 종류의 오류입니다.
용어집을 먼저 만들어두면 감수가 훨씬 빨라집니다. 제품명과 부품명, 인증 이름, 자주 쓰는 표현을 한 장에 정리해서 번역 전에 넘기는 거죠. 이게 없으면 같은 제품이 페이지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검색에서도 힘이 분산됩니다.
영문은 글자가 더 길다
디자인에서 가장 자주 터지는 문제입니다. 같은 뜻을 담는 데 영문이 글자 수를 더 씁니다. 한글로 네 글자인 버튼이 영문에서 열두 글자가 되면서 두 줄로 밀리거나 잘립니다.
줄바꿈 방식도 달라요. 한글은 어디서든 끊기지만 영문은 단어 단위로 끊깁니다. 좁은 칸에 긴 단어가 들어가면 여백이 들쭉날쭉해지죠. 그래서 다국어 사이트는 처음부터 글자가 늘어날 자리를 계산해 설계해야 합니다.
- 버튼과 메뉴는 두 줄이 돼도 깨지지 않게 잡는다
- 표 제목은 줄임말 대신 넓이를 확보한다
- 언어별 폰트를 따로 지정한다
주소 구조가 검색을 가른다
가장 흔한 실수가 한 주소에서 언어만 갈아 끼우는 방식입니다. 화면은 잘 바뀌는데 검색엔진이 영문 내용을 따로 수집하지 못해요. 영문 페이지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됩니다.
피해야 할 구조
- 한 주소에서 언어 전환
- 영문 내용이 수집되지 않는다
- 영어권 검색에 안 잡힌다
- 공유 링크가 국문으로 열린다
권하는 구조
- /en/ 처럼 경로로 분리
- 언어마다 주소가 따로 있다
- hreflang으로 서로를 가리킨다
- 사이트맵에 언어별로 넣는다
여기에 하나 더. 영문 페이지의 제목과 설명도 영어로 검색되는 말로 써야 합니다. 국문 제목을 그대로 직역하면 정작 바이어가 쓰는 용어와 어긋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의 폼에서 막히는 지점
공들여 만든 영문 사이트가 문의 폼 하나 때문에 안 돌아가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국내 폼을 그대로 번역했기 때문이에요.
전화번호 칸이 010부터 시작하도록 고정돼 있거나, 주소 입력이 우편번호 검색으로만 되거나, 날짜가 국내 표기라 헷갈리거나. 사소해 보여도 거기서 대부분 포기합니다.
반대로 넣으면 좋은 것도 있습니다. 회사명과 국가를 받는 칸, 그리고 회신 가능한 시간대요. 시차 때문에 바로 통화가 어려우니 언제 연락 가능한지를 적어두면 응답률이 눈에 띄게 올라갑니다.
지원사업으로 만들 수 있다
수출을 준비하는 기업이라면 중소벤처기업부 수출바우처의 디자인·홍보 분야로 외국어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습니다. 2026년 예산은 1,502억원으로 전년보다 226억원 늘었어요.
순서는 기업이 먼저 사업에 선정되고, 공식 포털에서 수행기관을 고르고, 협약 뒤에 작업이 시작되는 흐름입니다. 업체를 먼저 정하고 바우처를 알아보는 순서로 오시는 분이 많은데 반대입니다.
수행기관을 고를 때는 수행 건수와 만족도를 같이 보고, 우리 업종과 언어권 사례가 있는지 확인하세요. 아이모토는 디자인 분야 수행기관으로 2017년부터 2026년까지 10년 연속 선정돼 139건을 수행했습니다.
정리하면 외국어 사이트는 번역 작업이 아니라 구조 작업입니다. 무엇을 앞에 둘지, 주소를 어떻게 나눌지, 폼에서 무엇을 받을지 이 세 가지가 성패를 가릅니다.